“종말론적 희망에 관하여”

Exodus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Main Point: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신 후, 바로의 군대를 유인하여 그들을 바다에서 심판하신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집트 인들을 여호와가 주님을 이심을 알게 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은 여호와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Homiletical Point:
Exegetical Points:
하나님께서 홍애에서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셨을 때, 모든 백성들은 여호와가 애굽의 신보다 더 크신 분임을 확신하게 된다. 더 나아가, 모세에 대한 위상도 달라지게 되었다.
Good News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반드시 구출해 내신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 역사에서 인간이 기여해야 하는 영역은 없다.
하나님은 악을 반드시 심판하시고 궁극적인 선의 승리를 이끄신다.
Insights / Key Questions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능력과 긴밀히 연결된다. 애굽의 군대를 한순간에 제압하시는 홍해 전투는 인류 역사 속에 있었던 그 어떤 전쟁보다 통쾌한 승리 아닌가? 홍해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애굽의 시체들이 무엇을 말하는가?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주권자임을 인정하게 되는가? 우리는 언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게 되는가?
홍해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원 show!
Application
나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바로의 군대와 건널 수 없는 바다 사이에 있다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는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종류의 믿음이 있는가?
묵상 Theme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승리, 궁극적인 승리를 기대하라!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가? “다시 돌아가자…다시 노예가 되자..”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잊어버리는 이스라엘 공동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영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 거주하면서 너무나 쉽게 하나님을 등지고 예수님의 은혜를 저버린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헤아릴 수 없는 가격을 지불하셨는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구원의 은혜를 잊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전적으로 주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은 너무나 쉽게 마음이 변하고, 인간은 너무나 쉽게 좌절하고, 인간은 너무나 쉽게 낙심하고, 인간은 너무나 쉽게 포기한다. 만약, 구원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면 어느 누가 구원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어제 ‘유월절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오늘 ‘다시 노예가 되겠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Christianity is not about something that we can do to become better people; it is about what Christ has done through the cross and the empty tomb.

설교준비 Gathering
가장 강력한 군대가 무기력해지는 장면 (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는 어떤 교훈이 주어지는 것인가? “잠잠하라” 라는 명령은 위로의 메세지가 아니라 아주 강력한 명령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악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도 드러나게 된다. 죄와 악에 대한 승리를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영광이란, 승자가 누리는 영광이다. 악은 그치는 날이 있다. 제국은 영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만이 영원하다.
선은 악을 이길 수 없다. 선은 영원하지만, 악은 반드시 그치는 날이 온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영광이란 무엇인가? 선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갈 때 누리는 영광이 있다. 제국이 제공하는 영광을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것인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우리는 홍해에서 수장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궁극적인 미래의 소망이 오늘 내 삶의 현실과 연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바울의 기도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실재에 대해서 눈을 뜨게 도와주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신다. 왜냐하면, 나의 철저한 무능력을 경험하기 전까지 하나님의 강력한 손을 찾지 않습니다.
홍해는 심판의 도구이지만, 구원의 도구이기도 하다. 길을 만드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해내심!
적용? 하나님의 시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를 광야로 내모시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경험? 나의 한계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자리..
‘감기자신’ 과거에 대한 기억, 현재에 대한 자족, 미래에 대한 신뢰 = 이것을 합쳐야만 진정한 감사가 터져 나온다.
자족의 적은 탐욕이며, 신뢰에 대한 적은 두려움이며, … 멈추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관찰/해석/주석류
Exodus Form and Structure

Everything points to ch. 14 being an integral part of the Exodus story, ‘the climax and denouement of the account of YHWH’s confrontation with Pharaoh’ (Houtman 1996: 234).

14장은 1-14장 이야기의 절정이다. 여호와와 바로의 대결에서 누가 진정한 승리자인가?
1-4절: 여호와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계획에 대해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을 바꾸신 까닭은 바로의 군대를 불러들이기 위해서이다(2-3절).

Instead, they are told to turn back and encamp on the west side of the gulf with the gulf itself to their backs. This was a doubly strange thing to do. First, it took them in the wrong direction, and second, it placed them in a terrible tactical situation, entrapped against the sea and easily pinned down by a military force. But this, the text tells us, is precisely what YHWH intended, as the plan was to entice the Egyptians to abandon all caution and to press their military advantage against Israel. Tactically, Israel’s situation was terrible, but God would fight for them and save them.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도록 했다. 이것은 바로의 군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 같은 것이다. 바로가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만난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Having journeyed from Succoth to Etham on the edge of the wilderness (13:20), it might have been expected that the Israelites would proceed south-eastward out of Egypt into the Sinai Peninsula. However, unexpectedly YHWH directs the people to ‘turn back’ and move to a new encampment, probably requiring them to journey in a north-west direction.”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을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뭔가 다른 일을 하고 계심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이러한 바로의 마음을 앞서서 읽고 계신다(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헤맬 수 있어도, 하나님은 광야에서 길을 잃지 않으신다. NASB “They are wondering aimlessly in the land.” 바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읽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목적’을 기억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통제하신다. 장자를 잃은 슬픔도 잠시, 그는 또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출애굽기의 바로 왕은 이 세상의 최고 권력자로 그려지기 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서 이리 저리 놀아나는 불쌍한 인간 왕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의 군대를 광야로 이끄시는 이유는 그들을 쳐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가운데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4절).
How to Read Exodus Pharaoh’s Hard Heart

Pharaoh’s stubbornness meant that the plagues grew in intensity and led eventually to the dramatic moment on the shores of the Sea of Reeds. In this way, God both displayed his glorious power and he brought judgment on Pharaoh, the Egyptian people and even, as we will see below, the Egyptian gods.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시는 사건은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단순히 이스라엘 공동체를 바로의 손에서 구출해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고 부드럽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계속해서 거칠게 만드셔서 온 세상 가운데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신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한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 때문이다. ‘완악함’이라는 어떤 의미인가?
5-9절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시자, 바로는 온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이 변했다. ‘니팔’ 동사가 사용되었다. ‘수동태’다. 무시 무시한 초태생 저주가 애굽 전역을 뒤덮었으나, 또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죽음의 천사가 할퀸 자신들의 전 국가적 상처를 기억하기 보다는 여호와의 백성들을 쫓고자 마음을 먹는다.
바로의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 바로의 통치를 받은 그의 군대는 얼마나 비참한가? 10가지 재앙으로 두들겨 맞고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채 여호와의 손에 이끌려 광야로 돌진하는 바로의 모습 속에서 이 세상 권력의 어리석음을 보게 된다. 광야로 돌진하는 애굽의 군대 속에서 당대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위엄이 느껴지기 보다는 여호와의 통제 속에서 이리 저리 혼돈의 바다를 헤매는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된다.
Exodus Comment

‘Throughout 14:6–9, the accumulation of terms describing the Egyptian host emphasizes the inequality of the contest’ (Propp 1999: 493). Unlike the Egyptians, the Israelites have no horse-drawn chariots, nor are they likely to have been equipped for warfare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려움이 이해가 간다. 이집트 군대는 강력한 전차로 무장을 해서 쳐들어오는데 자신들은 아무런 무기가 없다. 최첨단 무기를 갖춘 미국과 권총 하나 없는 일반 시민들과 전쟁을 한다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10-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모세를 향한 원망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원망하고 두려워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시 106:7)
‘바로’ 라는 주어가 도치되어 강조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는 어떤 인물이었나?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삼고 자신의 빌딩을 짓도록 한 그 왕이 등장했을 때, 이스라엘 공동체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세’를 향해서 원망을 쏟아 놓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 안에 있은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이 사건의 결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진 불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의 진행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과거를 회상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언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다고 하셨나? 하나님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출 3:8; 3:17; 13:5; 33:3)
Exodus Comment

The people’s lack of trust in both Moses and YHWH becomes a recurring motif in the account of their wilderness journey, often involving a yearning to be back in Egypt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세와 여호와를 향한 불신앙은 앞으로 이어지는 민수기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기 때문에 과거의 삶을 그리워한다. 믿음은 미래를 기대하도록 하지만, 불신앙은 과거의 고통을 마치 좋았던 시절로 회상하도록 한다.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는 이집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그들은 단회적 구원 사건(=유월절)을 경험하였으나, 견인의 구원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그저 한번의 기적 사건에 그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는 이미 구원의 과정과 그 끝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도록 하기 위해서 구출해 내신 것이 아니다.
Exodus Comment

From their perspective, slavery is better than death; they would rather be slaves in Egypt than die in the wilderness.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비교하고 있는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광야에서 죽을 것인가! 무엇이 보이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 속에 무엇이 부재하고 있는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판단력이 상실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답 두개를 붙들고 광야에서 불평을 쏟아 놓고 있다. 때때로 우리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전혀 다른 결론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 스스로 우리 인생의 결론 두 가지를 정해 놓고 원망만 쏟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인들을 섬기도록 가만히 두시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모세는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무엇을 명령하는가? “See the salvation of the Lord.”
Exodus Comment

Most importantly of all, Moses announces that ‘YHWH will fight for you*, but you* will be silent’ (v. 14). The syntax of this statement underscores the contrast that is being made here between the actions of YHWH and the Israelites.

여호와의 행동과 이스라엘의 행동이 대조되고 있다. 여호와께서 싸우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분이 하시는 일을 목격하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보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서 수 많은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리도록 하신다. 할렐루야!
Exodus Comment

Whereas YHWH will do the fighting, the Israelites are to be calm and silent. They are to be witnesses, rather than participants in the battle. Their salvation will come from YHWH, who without assistance will overthrow the Egyptian army, ensuring that the glory for the victory will be God’s alone.

하나님은 전장에서 직접 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분의 승리를 목격한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 역사에서 인간이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원은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그 결과,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아주 작은 성과만 거두어도 자신들의 성취를 확대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인정 받고 싶어하고, 우리는 기여하고 싶어 하며,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영광을 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호와와 애굽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여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조용히 하나님의 일을 지켜볼 뿐이다.
Lexham Theological Wordbook יְשׁוּעָה

יְשׁוּעָה (yĕšûʿâ). n. fem. salvation, deliverance, victory, help. Refers to salvation from danger.

This noun is related to the verb יָשַׁע (yāšaʿ, “to save”). It primarily refers to salvation from danger or trouble, especially from enemies. It is used of Yahweh’s deliverance (yĕšûʿâ) of Israel from Egypt at the Red Sea (e.g., Exod 14:13). In 1 Samuel 2:1, Hannah identifies the birth of Samuel, according to God’s promise to her, as salvation (yĕšûʿâ) from God; while she is not being saved from military enemies, she is being saved from trouble and from the ridicule of her husband’s other wife. Psalm 20:6 uses yĕšûʿâ to refer to military victory.

견인 교리란?
13-14절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심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취하신다. 고대 근동의 전쟁은 자신들이 믿는 신들의 전쟁이다. 바로가 홍해에서 수장되는 장면이야말로 여호와가 온 세상의 진정한 ‘신’임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장면이다.

One might have expected that the miracle was for the benefit of Israel. But the point here is not that Egypt will be converted and have faith. Rather, it is that they will have to bow in defeat and admit to YHWH’s supremacy.

하나님께서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서 심판하시는 가장 큰 목적은 그들의 구원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여호와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